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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잉글랜드 상대로 반란 꿈꾸는 웨일스

유럽에서 가장 큰 섬인 브리튼(Britain)에 영국이 있다. 브리튼 섬의 첫 주인은 기원전 5세기경 유럽에서 건너온 켈트족이다.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는 기원전 55년에 브리튼 섬을 처음 침공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 공격을 감행한다. 마침내 로마는 서기 43년 브리튼 섬 남쪽을 점령했다. 이후 로마는 400여년 동안 브리튼 섬을 지배한다. 켈트족은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로마 문화에 동화된다. 하지만 쇠퇴하던 로마 제국은 395년 동서로 분열됐고, 410년 로마군은 브리튼 섬에서 철수했다. 로마군이 떠나자 섬의 북쪽, 지금의 스코틀랜드 지역에 살던 픽트족이 남쪽을 노린다. 이에 켈트족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유럽 대륙에서 용병을 데려온다. 이들 용병이 게르만의 일파인 앵글로 색슨족이다. 이들은 자기들 고향과 비교해 너무나 비옥하고 따뜻한 브리튼 섬에 매료된다. 이에 앵글로 색슨은 켈트족을 배신하고 이들을 공격한다. 결국 섬의 남쪽을 차지한 앵글로 색슨족은 일곱개의 왕국을 세웠다. 앵글로 색슨족의 공격을 받은 켈트족은 섬의 남서쪽인 현재의 웨일스 지역으로 피신한다. 웨일스(Wales)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로 “외국인의 땅(land of foreigners)”을 의미한다. 켈트족은 귀네드 왕국과 여러 소국을 세워 명맥을 유지했다. 13세기 귀네드 왕국의 흘러웰린 왕은 웨일스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며 자신을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으로 칭했고, 당시 잉글랜드 군주였던 헨리 3세는 이를 승인했다. 헨리 3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브리튼 섬의 통일을 위해 봉신 관계에 있던 웨일스를 공격한다. 웨일스 공국은 처절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1301년 에드워드 1세는 자신의 아들인 왕세자에게 웨일스 공 작위를 수여했고, 이로써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종속된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영국 왕 계승 예정자인 왕세자는 웨일스 공을 겸한다. 현재 웨일스 공은 찰스 3세의 장남 윌리엄 왕자다.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Union Jack)’은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국기는 성(聖) 조지(잉글랜드), 성 앤드루(스코틀랜드)와 성 패트릭(아일랜드)을 상징하는 십자가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에 웨일스의 상징은 유니온 잭에 왜 반영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다. 이유가 있다. 웨일스 지역은 16세기에 잉글랜드와 완전히 병합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될 때,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일부로 간주되었고 당시 이들은 독자적인 국기도 없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연장선상에 불과했다. 웨일스는 1955년까지 수도가 없어, 런던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레드드래곤’이 들어간 현재의 웨일스 국기도 1959년에 만들어졌다. 전통적으로 웨일스를 상징하는 레드드래곤이 유니온 잭에 포함되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관계를 의붓아버지와 아들에 빗대는 이들도 있다.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원치 않은 아들이고, 웨일스는 의붓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없으나 약간의 돈을 받는 것에 만족하며 이사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웨일스는 스코틀랜드와는 달리 영국에서 독립하겠다는 의지가 약하다. 강원도보다 약간 큰 면적에 320만 인구를 가진 웨일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럭비다. 웨일스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같은 럭비에서 세계 최강 팀 중 하나다. 웨일스는 1987년 시작하여 4년 주기로 개최되는 럭비 월드컵에 9번 모두 참여했고, 4강에도 3번 진출했다. 럭비에 비해 웨일스 축구는 유럽에서 변방에 가깝다. 웨일스의 월드컵 데뷔는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이루어졌다. 조별 예선을 통과해 8강에 진출한 웨일스는 이 대회의 우승팀이 될 브라질을 만나 선전했으나, 축구 황제 펠레에게 결승골을 내줘 0-1로 아쉽게 패했다. 웨일스는 1980년대에 마크 휴즈와 이안 러시라는 걸출한 스타를 앞세워 월드컵과 유로 대회 본선에 도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들은 1990~2000년대에도 라이언 긱스와 크레이그 벨라미를 앞세워 부활을 꿈꿨으나 메이저 대회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 가레스 베일과 아론 램지 등을 앞세운 웨일스는 메이저 본선을 다시 두드렸고, 결국 2016 유로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당시 잉글랜드는 인구 30만의 아이슬란드에 2-1로 지며 8강 진출에 실패한 데 반해, 웨일스는 4강에 진출했다. 웨일스가 잉글랜드와의 간접 대결에서 이긴 것이다. 웨일스는 2020유로 대회에서도 16강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 6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1-0으로 꺾고 웨일스는 2022 카타르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다. 무려 64년 만에 웨일스가 두 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웨일스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미국, 이란과 함께 B조에 속해 있다. 만약 웨일스가 축구가 아닌 럭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만났다면 분위기가 크게 달랐을 것이다. 웨일스에서 럭비는 종교이고, 잉글랜드는 퇴마의 대상인 악마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2016유로에서도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B조에 같이 속했다는 것이다. 당시 웨일스는 세네갈이 2002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꺾었듯이 피지배자의 반란을 꿈꿨다. 하지만 후반 추가 시간에 골을 허용한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1-2로 아쉽게 졌다. 6년 만에 메이저대회에서 다시 만난 웨일스가 잉글랜드를 상대로 이번에는 반란에 성공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11.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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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영국 여왕이 사랑한 클럽은?

영국 왕실은 오랫동안 스포츠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딸인 앤 공주는 유럽 승마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데 이어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 영국 대표로 참가했다. 앤 공주의 딸 자라는 2012 런던 올림픽 종합마술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 영국 왕실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당시 시상식에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자 어머니인 앤 공주가 딸 자라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진귀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승마 외에도 왕실 인사들은 테니스, 폴로, 럭비, 스키, 크리켓,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하노버 왕조의 빅토리아 여왕은 사촌이자 독일인 앨버트 공과 결혼해 영국 왕실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 시대를 맞이한다. 이로써 영국 왕실은 친가와 외가 모두 독일계 왕조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1914년에 발발하면서, 영국 내에서 반(反) 독일 감정이 일어난다. 곤경에 빠진 당시 영국 왕 조지 5세는 독일계 가문명을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이에 생존을 위해 영국 왕실은 왕조의 문장에서 작센 가문의 흔적을 지우는 등 독일과의 관계를 끊었다. 이때 가문명도 왕실의 오랜 터전이었던 윈저 성의 이름을 따 ‘윈저 왕조(House of Windsor)’로 바뀐다. 해군 장교 출신이었던 조지 5세는 유럽에서 군주제가 몰락하고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설치던 시절 영국 왕으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대영제국은 그의 재임 시절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즉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린 군주가 조지 5세였다. 조지 5세는 검소한 삶을 살았고, 자식들 교육에도 엄격했다. 하지만 그의 장남 에드워드는 파티를 즐기고, 기혼 여성들과 불륜을 저지르는 말썽꾸러기였다. 장남에 실망한 조지 5세는 차남인 앨버트와 손녀인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잇기를 희망했기에 “에드워드가 절대 결혼하지 말고 아이를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아울러 조지 5세는 “내가 죽은 후 에드워드가 왕이 되면 12개월 안에 망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했다. 1936년 조지 5세가 서거하자 장남은 왕위를 물려받아 에드워드 8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2번의 이혼 경험을 가진 미국인 심프슨 부인과 사랑하는 세기의 로맨스를 벌이며, 왕에 오른 지 10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다. 아버지 조지 5세의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결국 공석이 된 왕 자리에 에드워드의 동생 앨버트가 오르며 조지 6세가 된다. 소심한 성격의 조지 6세는 사실 왕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특히 그는 말을 더듬는 치명적인 버릇이 있었는데, 이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이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콜린 퍼스가 조지 6세를 연기해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에 감동스럽게 그려져 있다. 한편 조지 5세 시절인 1927년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주관하는 FA컵에는 새로운 전통이 생긴다. 당시 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알프레드 월은 조지 5세의 사랑을 받던 찬송가 ‘나와 함께 하소서(Abide with Me)’를 결승전 식전 행사에 도입했다. 이 찬송가는 삶과 죽음을 통틀어 하나님이 화자와 함께 계시기를 바라는 기도로, 1912년 타이타닉 호가 대서양에서 침몰하던 당시 선상 밴드가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이후 ‘나와 함께 하소서’는 지금까지 매년 FA컵 결승전에서 불리고 있다. 밴드의 연주와 함께 초대 가수가 선창하면 관중은 이를 따라 부르는데,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만은 특별한 믿음의 순간이라고 한다. 럭비 리그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1929년부터 지금까지 챌린지컵 결승전에서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 왕의 자리가 버거웠고 2차 세계대전 중 국왕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치르면서 건강이 악화한 조지 6세는 1952년 56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왕위를 이어받은 그의 장녀가 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다. 결국 조지 5세의 소원대로 차남에 이어 손녀가 왕위에 앉은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FA컵 결승전을 여러 차례 직접 관람하는 등 축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국가의 수장으로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여왕은 자신이 응원하는 클럽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했다. 여왕은 아스널 FC가 2006년 새 홈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개장할 때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남편 필립 공작을 대신 보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이듬해 아스널을 버킹엄 궁전으로 초대해 다과를 가졌고, 당시 감독이었던 아르센 벵거와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서 특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파브레가스는 언론에 여왕이 아스널 팬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 신문사 데일리 미러의 2009년 보도에 의하면 여왕이 오랫동안 사랑한 팀은 해머스(The Hammers)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동런던 클럽 웨스트 햄이다. 여왕은 왕실 직원들이 밀월FC에 대해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듣고, 자신은 밀월과 앙숙 관계인 해머스의 팬이라고 살짝 밝혔다는 것이다. 여왕의 뜻밖의 고백에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여왕의 평소 이미지와 과격한 팬을 많이 거느린 웨스트 햄과는 너무나 큰 간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웨스트 햄의 본거지인 업튼 파크(Upton Park)에서 생활한 적 있는 필자 입장에서도 여왕의 발언은 정말 뜻밖이었다. 필자가 런던 전역에서 살아봤지만 업튼 파크만큼 살벌하고 밤에 혼자 나가기 싫은 지역도 없었다. 여왕의 웨스트 햄 사랑은 클럽의 가장 성공적인 감독이었던 론 그린우드에 대한 존경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왕은 해머스를 1965년 유럽피언 컵 위너스 컵 정상에 올려놓은 그린우드 감독을 여러 번 만났고,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아울러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 공군의 집중적인 폭격에도 굴하지 않았던 ‘동런던 시민(East Enders)’에 대한 여왕의 존경심도 해머스를 응원하게 만든 계기였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6.2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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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 송강호, 로카르노 엑설런스어워드 수상 '영예'[공식]

송강호가 아시아 배우 최초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엑설런스 어워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송강호는 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데 이어 오는 8월 열리는 72회 로카르노국제 영화제에서 ‘Excellence Award’(엑설런스 어워드)를 수상하게 되는 겹경사를 맞았다. 송강호의 수상 사실은 16일 오후 12시 30분(현지 시간) 배포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측의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올해로 72회째를 맞는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는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개최되는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영화제 중 하나다. ‘엑설런스 어워드’는 2004년부터 독창적이고 뛰어난 재능으로 영화의 세계를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한 배우들에게 헌정되는 특별한 상이다. 기존의 수상자들은 수잔 서랜든, 존 말코비치, 이자벨 위페르, 줄리엣 비노쉬, 에드워드 노튼과 작년의 에단 호크 등 유럽과 할리우드를 아우르는 명배우들로 송강호는 아시아 배우들 중에서 최초로 수상자로 선정됨으로써 각별한 의미를 더했다.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의 예술감독인 릴리 힌스틴은 송강호를 수상자로 선정한 것에 대해 “’엑설런스 어워드’는 의미 있고 용기 있는 길을 걸어간 배우들에게 헌정하는 상이다. 지금까지는 전부 유럽과 미국 배우들에게 주어졌으나, 우리는 이 상이 전 세계 영화의 다양성에 문을 여는 것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송강호는 서구 관객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전 세계 관객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다양한 층위를 지닌 배우인 그는 한국 영화가 뿜어내는 강렬하고 다양한 감정의 가장 뛰어난 전달자였다. 드라마에서 하드보일드 스릴러까지 어떤 장르건 편안하게 녹아들었던 그의 얼굴과 육체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같은 감독들의 작품들과 연결되어 지울 수 없는 강한 자취를 남겼다.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그 누가 지난 20년간의 한국 영화가 보여준 뛰어난 성취를 자신의 연기를 통해 육화시킬 수 있었을까? 우리는 송강호가 아시아에 주어지는 첫 번째 ‘엑설런스 어워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점이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송강호는 8월 열리는 로카르노영화제에 직접 참석해, 영화제 메인 광장인 피아짜 그란데에서 열리는 시상식 및 관객과의 대화 등 다양한 행사에 참석, 5월의 칸 국제영화제에 이어 또 한 번 전 세계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송강호는 전원백수 가족의 가장 기택 역으로 또 한번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예정이다. 30일 국내 개봉한다.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2019.05.1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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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첫 아들 임신 당시 에드워드 증후군 의심받아”

방송인 김성주가 첫 아들(8)이 에드워드 증후군 의심 소견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김성주는 24일 SBS '자기야'에 출연해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에드워드 증후군을 의심받았었다"고 밝혔다. 김성주는 "첫째 민국이를 임신해 5개월 정도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아기가 좀 이상하다'고 하시더라"며 "'아기 머리에 혹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당시 아내에게 '양수검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애가 이상하면 어떡하냐'고 물어봤는데 아내는 '애가 이상하면 안 낳을 거야?'라고 되묻더라"며 "굉장히 뜨끔했다. 아내가 '검사 안 할 거다. 나는 어떻게 태어나든 아기를 키울 거다'라고 말해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다"고 고백했다. 다행히 김성주의 장남 민국 군은 건강하게 태어나 잘 자라고 있다. 에드워드 증후군은 2개가 존재해야 하는 18번 염색체가 3개가 되어 발생하는 선천적 기형 증후군이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김성주의 두 아들 민국·민율 군의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김주희 기자 juhee@joongang.co.kr사진= SBS 캡처 2012.05.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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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꼬집는 눈, 통(通)-장석주의 쾌설] 나의 버킷 리스트

한동안 '남자의 자격'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은 적이 있다. 뮤지컬 음악감독인 박칼린씨를 내세워 합창단을 꾸렸을 때 나는 '남자의 자격'의 ‘본방’을 사수하는 열혈 시청자가 되었다.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김국진·김태원·양준혁·이윤석·전현무·윤형빈 등 일곱 남자들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소재로 삼은 오락 프로그램이다. 이경규가 40대를 막 넘어선 50대이고, 김국진·김태원·양준혁·이윤석은 40대고, 전현무와 윤형빈은 40대를 바라보는 30대 중반이다. 그러니까 ‘남자의 자격’ 구성원들의 중심축은 40대 남자들이다. 그들은 이미 청순함과 미숙·열정이 어지럽게 뒤섞인 스무 살 무렵의 청춘들이 아니다. 40대란 자신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일단 청춘의 제일선에서 물러나는 나이다. 늙었다고도 젊었다고도 할 수 없는 40대는 인생의 반고비에 이르는 연령대이기도 하다. 생물학적 삶의 토대가 한층 견고해지면서 문득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도 이 무렵이다. '남자의 자격'은 그런 40대에 포커스를 맞추고, 청춘의 불안과 질풍노도를 잠재우고 현실에 안착하면서 살 만해진 중년에 접어드는 남자들이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에 대한 도전 이야기를 펼쳐낸다. 박칼린 씨가 이끈 합창대가 ‘넬라 판타지아’라는 노래로 깊은 감동을 끌어내며 막을 내린 뒤 김태원 씨가 지휘자로 나선 ‘실버합창단’이 이어졌는데, 이때 사람들에게 버킷 리스트란 인생의 어느 시기에 덧없이 놓친 꿈 찾기이자, 생의 책임과 의무에 복무하느라 방치한 자아 찾기라는 게 또렷하게 드러났다. 백발이 성성한 사람들이 '남자의 자격' 오디션에 응모하며 왜 자신들의 인생에서 노래하는 것이 버킷 리스트가 되었는지를 진솔하게 고백할 때, 인생의 만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노래를 하게 된 이들의 얼굴은 행복과 설렘으로 빛이 났다. 그들은 더도 덜도 아닌, “행복해지기 위해 분발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지평을 연다. 선수를 쳐서 행복을 앞질러 나아갈 때, 바로 그때 행복이 우리에게 온다”(베르트랑 베르줄리)는 것을 가르쳐준다. ‘버킷 리스트’는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나온 영화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2007)로 널리 알려졌다. 카터 체임버스(모건 프리먼)는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는데, 어느 날, 대학 신입생 시절 철학교수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라고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커터 체임버스는 46년의 세월이 지나 자동차 정비사로 사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그는 버킷 리스트가 자신이 잃어버린 행복에의 꿈이라는 걸 깨닫는다. 동시에, 그의 인생은 그 잃어버린 꿈들이 만든 구멍들로 공허해졌다는 확신에 이른다. 우연히 한 병실을 쓰게 된 에드워드 콜(잭 니콜슨)은 버킷 리스트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다. 그의 관심은 오직 돈을 벌고 사업체를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꿈과 다른 현실을 사는 두 사람이 한 병실을 쓰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돌아보고, 그리고 삶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 두 사람은 병실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간다. 두 사람의 길을 이끄는 것은 바로 두 사람만의 버킷 리스트다. 두 사람이 어딜 가고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세렝게티 초원에서 지프를 타고 피라미드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 그 여정을 통해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닫느냐는 것이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세운 타지마할에서 그들은 저마다 겪은 사랑과 경험들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데, 이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내면에 비쳐드는 한 줄기 진정한 변화의 빛이야말로 버킷 리스트가 주는 진정한 가치다. 당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당장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정말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적어라! 그게 바로 당신의 버킷 리스트가 될 것이다. 청나라의 문장가 장조는 “손에 쥔 부채만 보아도 그 사람의 우아하고 속됨을 알 수가 있고, 그 사람의 교유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고 썼다. 이때 부채는 버킷 리스트의 은유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당신의 버킷 리스트는 당신이 처한 현실과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는 목록이다.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당신의 버킷 리스트에는 외국어 공부하기, 가족을 위해 시간 갖기, 운동하기, 좋은 인맥 만들기, 나만의 시간을 갖기, 여행 떠나기, 미친 듯이 일하기, 연애나 결혼하기, 체중을 줄이기, 매일 아침 신문 읽기, 1년에 책 100권 이상 읽기, 술과 담배 끊기… 등등이 들어갈 수도 있다. 나는 버킷 리스트를 100가지 쯤은 적을 수 있다. 내게 버킷 리스트는 내면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와 같은 것이다. 내가 나만의 버킷 리스트로 그림 그리기, 고전음악을 감상하는 방을 갖기, 마라톤 완주 해보기, 피아노 연주법 배우기, 태극권 수련하기, 공중부양에 도전하기, 가끔씩 단식하기, 프로방스(프랑스 남부)에서 1년을 살아보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이 있는 그리스 크레타 섬 방문하기,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보기, 아미쉬 마을에서 살아보기,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기, 공동체 마을을 꾸리며 살기, 평생 일 안하고 놀기, 날마다 국립도서관에 나가 미친 듯이 책 읽기, 마침내 국립도서관에 꽂힌 책을 다 읽기, 집에 대나무를 심고 대숲에 스치는 바람소리 듣는 것을 낙으로 삼기, 모란꽃과 작약꽃을 심고 작은 연못을 파서 수련을 심기, 정원 가꾸기, 사춘기 때 잠깐 스쳤던 나만의 베아트리체를 찾아 나서기, 세상의 계곡을 흐르는 시냇물 소리의 아름다움에 등급을 매기기, 온실에서 각종 새들을 키워보기… 등등을 적어내려 갈 때 그 하나하나는 어떤 발자국도 찍히지 않는 흰 눈밭 같이 순결하다. 인생에는 오로지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내가 걸어온 길과 내가 가지 않은 길. 내가 선택하고 걸어온 길은 지금 나의 현실과 운명을 이루고, 내가 가지 않은 길은 이루지 못한 꿈과 동경(憧憬), 부재하는 현실이다. 한참 그림에 몰두해 있던 고등학교 입학을 할 무렵 나는 예술고 진학을 원했지만 집안 어른들은 실업계 진학을 권유했다. 그 당시 가세가 기운 집안의 장남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실업계 고교를 나와 은행과 같은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그림을 배우려는 꿈은 차선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란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는 현장이니까, 항상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박성의 압박감을 준다. 꿈은 현실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은 뒤의 문제다. 버킷 리스트는 그 본질에서 비현실적이고 비효용적이다. 그것은 현실적인 선택에서 밀려나고, 차선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백하고 단순하다. 그것은 현실적인 생존 문제들을 해결하는 측면에서 비효용적이고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버킷 리스트는 살아남기 위해 뒷전으로 밀어놓은 일들, 꿈과 동경으로 남게 된 목록, 즉 가지 않은 길이다. 버킷 리스트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하고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아름답다. 어쩌면 버킷 리스트는 없어도 그만인, 먹고 사는 일과 무관한 생의 잉여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의 합목적성에 함몰돼 낮밤 가리지 않고 달려온 이 삶의 팍팍함을,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그 이루지 못한 꿈들이 만든 설렘과 기대들로 꿋꿋하게 견뎌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당신의 버킷 리스트를 적어보라! 그것은 현실에서 유예했던 꿈과 행복을 찾으려는 첫 번째 시도가 될 것이다. 버킷 리스트가 당신에게 주어진 삶을 행복으로 바꾸는 마법을 가진 리스트로 만들어보라!※버킷 리스트 Bucket List 죽기 전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 자살이나 사형 시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Bucket)를 차버리는 행위에서 비롯됐다.장석주는 2000년 서울을 떠나 경기도 안성에 ‘수졸재’를 짓고 글쓰기와 독서에 몰두한다. 문학가로는 보기 드문 부지런함으로 시인·소설가·문학비평가 등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 노자·장자·주역 등에 빠져 지내며 최근 15번째 시집 ‘오랫동안’을 펴냈다.사진=영화 2012.03.2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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